보험과 손해배상 전문 변호사 한세영입니다.
최근 유병자 보험 가입자가 가입 후 발생한 전이암에 대해서 암 진단비 보험금을 청구하면 이를 지급하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와 관련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보험계약을 할 때 '계약 전 알릴 사항'이란 서류를 작성하게 됩니다. 여기 보면 최근 5년 내에 입원·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지 혹은 30일 이상 약을 먹은 적이 있는지 물어보는 질문이 있는데, 그런 사실이 있으면 보험 가입이 어렵죠. 그래서 고혈압, 당뇨 등의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던 분들과 과거에 심근경색, 뇌졸중 등으로 수술 이력이 있었던 사람들은 보험 가입이 어려웠습니다.
유병자 보험은 위와 같이 만성질환을 앓고 있거나 과거 보험 가입 전에 병력이 있어서 일반 보험에는 가입이 어려운 사람들도 가입할 수 있는 보험입니다.
이를 위해서 보험사는 '계약 전 알릴 사항'의 질문 내용을 줄이거나 완화시켰고(즉 심사 조건을 완화해서 보험 인수가 거절되는 사람의 범위를 축소시켰고), 대신 일반 보험보다 위험률이 높기 때문에 훨씬 더 비싼 보험료를 책정했습니다.
이 유병자 보험에는 크게 간편심사보험과 유병력자 실손보험이 있는데, 오늘 할 이야기는 진단비, 일당 등 정액 보장을 제공하고 있는 간편심사보험 유형에 관한 것인데요. 그중에서도 간편심사 보험의 암 진단비 담보와 관련한 것입니다.
이러한 유병자보험의 간편심사보험은 보험사마다 또 보험상품마다 '계약 전 알릴 사항'의 질문이 제각각이었는데, 최근에는 '최근 1년 내에 질병(상해)으로 입원·수술을 한 사실이 있는지'만을 물어보고 그러한 사실이 없으면 모두 보험 가입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보험상품도 판매되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암으로 수술을 받았던 환자들이 이 상품에 암 진단비를 특약으로 부가해서 정말 많이 가입을 했다고 합니다.
이 유병자 보험을 X 보험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X 유병자보험의 가입자가 보험에 가입한 이후 전이암을 발견하고 암보험금을 청구했는데요. 보험사가 암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사실관계와 보험사 거절 이유
2년 전 직장암으로 수술을 받아 매년 추적 관찰을 하던 A 씨는 설계사의 권유에 암 진단비 특약을 부가해서 X 보험에 가입했습니다. X 보험은 '계약 전 알릴 사항'에 최근 1년 내 수술을 받은 사실이 있는지만 확인하고 있으므로, A 씨는 보험 가입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A 씨는 가입 후 면책기간(90일)이 지난 이후 병원에 갔다가 직장암이 간과 폐로 전이된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A 씨는 전이암 부분에 대해서 암 진단비 보험금을 청구했는데, 이에 대해서 보험사는 A 씨의 전이암(간, 폐)은 모두 보험 가입 전에 발생한 직장암으로 분류되니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보험사의 부지급 주장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어쨌든 보험사의 이 요상한 주장이 대체 무엇일까 추측해서 이해를 시도하려면 먼저 2가지 정도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우리 법은 보험계약 당시에 보험사고가 이미 발생한 경우에는 그 보험계약은 무효가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상법 제644조).
또한 암보험 약관에 보면, "전이암의 경우 원발 부위(암이 원래 발생한 부위)를 기준으로 분류한다."라는 소위 '원발암 기준 분류 규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암보험 약관에는 이런 원발암 기준 분류 규정이 다 들어있습니다.
이 두 가지 사항을 짬뽕시킨 보험사의 주장을 추측해서 쉽게 정리해 보면 이런 것 같습니다.
음? 뭔가 이상합니다.
보험에 가입할 때 알릴 필요가 없다고 해서 알리지 않았던 사실을 이유로 보험금을 못 주겠다고요?
이러한 보험사의 주장에 대해서 보험계약자 측에서 일하는 손해사정업계는 일반적으로 아래와 같은 이유로 보험사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보험계약 전에 발병의 소인이나 증상 등이 있었던 경우에는 보험기간 중에 그로 인한 보험금 지급사유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이른바 ‘계약 전 발병 부담보 조항'을 보험계약자 측을 부당하게 불이익하게 하고, 보험자가 부담하여야 할 담보책임을 상당한 이유 없이 배제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약관규제법에 따라 무효라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조정 번호 : 제2017-9호 ).
손해사정업계는 고지의무 위반이 아니라는 점에 더해서 위와 같은 분조위의 판단 취지에 따라 현재 유병자 보험의 분쟁 사안에서 보험사의 주장이 옳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의견으로는,
손해사정업계가 고지의무 위반의 측면에서 이 문제를 접근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지의무 위반의 문제는 보험계약이 유효하게 체결된 이후에서야 다루어질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보험계약이 무효라면 어차피 무효니까 굳이 고지의무 위반 문제를 다룰 필요가 없겠죠. 또한 분조위의 결정은 과거 약관규제법 위반 소지가 있는 조항이 약관에 존재했던 경우에 대한 판단인데, 그러한 조항은 과거 분조위 결정 이후 모두 약관에서 삭제되어 유병자보험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현재 유병자 보험과 관련된 문제는 직접적으로 분조위 결정의 내용이 반영될 사항도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보험사의 말이 옳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고지의무와 보험사고의 객관적 확정에 관한 상법 규정은 서로 다른 목적과 효과를 가지고 있는데, 현재 유병자 보험은 고지의무 위반의 문제가 아니라 간편 고지 보험 자체가 유효한 보험계약이라고 볼 수 있는지가 문제 되는 사안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상법 제644조에서 말하는 보험사고의 객관적 확정이란 것은 보험사고의 우연성이 상실된 경우에는 보험계약의 효력이 없다는 것이므로 지금 문제가 되는 유병자 보험의 가입 후 전이암 발병은 보험 가입 전에 확실히 혹은 필연적으로 예견되는 것이 아니므로 우연성이 상실되는 경우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무효라고 볼 수 없는 것이죠. 보험사 역시 유병자보험계약이 무효라고 생각한다면 받아 간 보험료를 돌려줘야 할텐데 그러고 있지는 않죠.
그럼 다음으로 보험계약이 유효하니 고지의무 위반 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인데, 보험계약 체결 시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하면 이 사안은 보험사가 고지의무 위반을 주장할 수 있는 경우도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보험사가 원발암 기준 분류 규정을 여기에 짬뽕심켜서 보험금 부지급의 근거로 삼는 것은 원발암 기준 분류 규정이 약관에 삽입되게 된 동기와 목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부당한 주장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이를 보험금 부지급의 근거로 사용되면 안 되겠죠.
오늘의 주제는 여러 가지 법적 쟁점을 포함하고 있는데 쉽게 설명하려다 보니 구체적인 내용을 다소 언급하기 어려워 제외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혹시 현재 유병자 보험과 관련해서 보험금 지급으로 분쟁을 겪고 있으시다면 꼭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보험과 손해배상 전문 변호사 한세영이었습니다.
저의 사무실은 보험&손해배상 전문 변호사와 손해사정사 자격을 갖춘 직원이 함께, 손해배상, 개인보험, 산재보험, 자동차보험, 운전자보험, 암 진단비, 실비보험금, 보험 사기 등 보험과 관련된 분쟁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부산 경남뿐만 아니라 전 지역 모두 수행하고 있으니 위와 관련해 어려움을 겪고 계시면 부담 없이 상담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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