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야기는 본인의 동의를 얻었기 때문에 실제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실화냐? 네 실화입니다.
이전 글들과 마찬가지로 1인칭으로 작성합니다.
1. 잘못된 욕심과 끔찍한 추락 사고
환갑이 넘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지만 아직 돈 나갈 곳이 많았기 때문에 다른 직장을 찾는 동안 실업급여를 신청했습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괜찮은 직장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직장을 알아보며 실업급여를 받고 있던 도중 친구의 소개로 다른 사람 명의로 단기간 일할 수 있다는 건설 현장을 소개받았습니다.
다른 사람 명의로 일하게 되면 받고 있는 실업급여를 계속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정수급에 해당하는 걸 알았지만 당장의 형편이 어려워 받고 있던 실업급여를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현장 소장과 친구 명의로 고용계약서를 작성하고 친구 명의 통장을 급여 계좌로 신고하였습니다.
내 사정을 봐준 회사가 고마워서 남들보다 조금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며칠 동안 별일 없이 일하던 중 하루는 지상에서 5미터 높이 위에서 하는 작업에 투입되었습니다.
사다리 위에 올라가 한참 작업을 하던 중 동료 근로자가 잠시 사다리를 놓았고, 그 사이 강풍이 불어 그만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허리가 우지끈하는 소리를 내 귀로 들었고, 고통에 의식을 잃지는 않았지만 다리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2. 회사와 합의 그리고 보험금 청구
보통 같으면 당연히 구급차를 공사 현장으로 불러서 병원으로 가야 했지만,
그렇게 하면 소방센터와 병원에 일을 하다가 다친 것이 기록으로 남게 될 상황이었습니다.
현장에서는 제가 다른 사람 명의로 일하는 중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구급차를 부르는 대신 현장 소장에게 먼저 알렸습니다.
사고 발생 사실을 알고 달려온 현장 소장은 본사에 사고 사실을 알렸고, 본사로부터 처리 방법을 기다렸습니다.
한 시간가량이 지나도 본사로부터 뾰족한 답이 없었고, 격해지는 통증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친구를 불러 병원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친구가 곧 현장에 도착했고 합판 위에 대강 제 몸을 고정시킨 뒤 트럭 화물칸에 저를 실어 응급실로 갔습니다.
어떻게 다쳤냐는 간호사의 물음에 공사 현장에서 다쳤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어 친구 집에서 일을 도와주다가 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응급수술을 마치고 입원 수속 중 찾아온 현장 소장은 다른 사람 명의로 일을 하다가 다친 것이기 때문에 산재처리가 여럽고,
피해 보상에 대한 합의서도 회사가 아니라 본인과 써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때는 앞으로 어마어마한 치료비가 들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현장 소장에게 합의금을 받고 나머지는 실비 보험으로 처리하면 되겠지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으레 그래왔던 것처럼 앞집에 살던 보험설계사에게 보험사에 실비청구를 대신해달라고 부탁했고,
사고 경위도 대수롭지 않게 그냥 친구 집에서 일하다 떨어졌다고 말해주었습니다.
3. 뭔가 이상한 보험사의 반응과 형사고소
그런데 다른 때와 달리 간단히 실비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몇 번 담당 조사자라는 사람에게 전화가 왔었고, 이것저것 서류를 받아 갔습니다.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았고, 참다못한 아내가 여러 번 항의 전화를 한끝에 실비보험금이 지급되었습니다.
그렇게 2번 정도 실비 보험금을 받았고, 가까운 병원으로 전원 해 치료를 계속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경찰서로부터 보험사기 혐의로 조사할 것이 있으니 출석하라는 전화를 받게 되었고,
거동이 불편한 저 대신 아내가 먼저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기로 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한 이후에 저를 보험 사기꾼으로 고소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경찰관이 제가 신청도 하지 않은 후유장해보험금을 이야기하며 보험 사기란 말을 하였던 것입니다.
4. 이해할 수 없는 경찰과 보험사의 태도
아내는 영문도 모르고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게 되었는데, 경찰관은 아내에게 제가 사고 경위를 실제와 다르게 조작해서 후유장해보험금을 청구하였다며 이것저것 질문하였습니다.
저는 그때만 해도 장해 보험금이 뭔지 잘 알지도 못했습니다.
아내는 경찰관에게 장해 보험금을 청구한 적이 없다고 계속해서 이야기했지만, 경찰관은 제보자의 진술을 확보했고, 보험사가 증거를 이미 다 제출했다고 하면서 계속해서 추궁했습니다. 아내는 결국 더 이상 조사를 받지 않겠다고 이야기하고 조사를 거부한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한편 회사는 현장소장 명의로 저와 민사합의를 해놓고는 아내가 경찰 조사를 받은 시점까지도 합의금을 지급해 주지 않고 있었습니다.
치료비가 없어서 여기저기 돈을 빌려야 했는데, 경찰 조사도 받게 되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아내와 상의 끝에 보험 분야의 전문 변호사를 찾아 상담을 받아 보기로 하였습니다.
5. 변호사로부터 듣게 된 이야기들
변호사는 제가 사고 난 순간부터 잘못된 선택을 하는 바람에 계속해서 좋지 않은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현재 제 몸 상태를 감안했을 때 실제 사고 경위대로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신청을 하고, 산재처리를 받는 것이 치료비를 아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실업급여를 부정수급한 사실이 드러나게 되니 고용보험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밖에 없고, 회사도 함께 처벌받게 될 것이라 알려주었습니다.
회사로부터 민사상 손해배상금을 지급받지 못했으므로 현장소장과 작성한 합의서와 관계없이 별도로 회사가 가입한 근재보험에 보험금 청구도 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다른 사람 명의로 일하게 해 준 회사에 피해가 가는 것이 조금 걸렸지만, 한편으로는 다친 뒤 제대로 합의금을 지급하지 않아 화가 나기도 했기 때문에 변호사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6. 길었던 1심 재판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산재신청을 해서 요양급여를 지급받게 되었습니다.
회사가 가입한 근재보험에서 민사상 손해배상금을 지급받았습니다.
실업급여 부정수급에 대해서 자수하여 벌금형 처벌을 받았고, 회사도 처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너무 받은 탓인지 산재신청 후 이것저것 검사하던 과정에서 몸속 곳곳이 이미 전이되버린 암을 발견했습니다.
남은 것은 보험 사기로 고소된 것인데..
선임한 변호사가 경찰에 출석해서 후유장해보험금을 청구한 사실이 없다는 점을 증명해줬지만
검찰은 제가 보험사를 속여 의료실비 보험금 등을 편취했다며 저를 약식기소하였고,
법원은 제게 벌금 1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내렸습니다.
100만 원을 내고 끝낼까도 생각했지만, 너무 억울했습니다.
약식명령에 이의신청을 해서 정식재판이 시작됐고, 10달 동안 재판이 진행됐습니다.
저는 그 사이 암 수술도 받았습니다. 주치의는 깨어날 확률이 절반도 되지 않았는데 잘 버텼다고 했습니다.
거뭇했던 머리카락이 10달 만에 모두 백발이 되어 버렸습니다.
소송 중 법원이 보험사에게 여러 자료들을 제출할 것을 명령했지만, 보험사는 끝내 회신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선고하는 날 아내의 부축을 받아 법원으로 갔습니다.
다행히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길었던 1심 재판이 끝났습니다.
한동안 날아갈 듯 기뻤지만 변호사가 검사의 항소로 2심 재판이 진행될 것이라 알려주었습니다.
암 수술 이후 제 수명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죽기 전까지 무고함을 증명할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이 사건은 이것저것 수사 과정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은 사건이지만,
아직 항소심이 진행 중이어서 공개하기 곤란한 부분이 있습니다.
의뢰인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되었는데,
선고 시까지 저를 믿고 따라와 준 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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