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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 종합 계획
보건복지부가 2024. 2. 4. 국민건강보험 종합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 중에서 제가 관심 있는 혼합진료 금지에 대해 간략히 살펴볼까 합니다. 보험업계에 종사하는 분들이 함께 보고 고민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문제가 뭔데 갑자기 뭘 바꾼다는 것인가
이번 종합 계획은 크게 3가지 점을 계획 수립의 배경으로 두고 있습니다. 첫째는 '의료공급 위기', 둘째는 '의료서비스 변화', 셋째는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우려'입니다.
의료공급 위기는 지역의료 공백, 필수의료 공백 등을 말하고, 의료서비스 변화는 고령화, 정신건강서비스 수요 증가, 계층 간 건강 격차 확대 등을 말합니다. 이 부분은 제 관심분야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종합 계획 수립 배경 중에서 제가 관심 있는 부분은 바로 의료비 지출의 증가로 인한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우려'입니다. 그중에서도 의료 남용과 비급여 팽창에 관한 부분입니다.
그중에서도 급여 부분이 아닌 비급여와 관련된 부분인데, 정부는 실손보험의 활성화가 불필요한 의료 쇼핑을 증가시키고, 의료기관의 수익 보전 욕구와 맞물려 혼합진료로 비급여와 급여 지출이 함께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거기다 제가 평소 만나왔던 의사들과 병원 운영자들로부터 들었던 의료계 상황도 같이 말씀드릴게요.
현재 의료계에 문제가 많습니다.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건강보험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합니다. 저는 그중 실손의료비보험과 관련이 있는 부분에 관심이 있어서 그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먼저,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는 진료항목을 급여라고 하고, 적용되지 않는 항목을 비급여라고 합니다. 급여항목 치료는 전체 치료비 중에 일부만 내 돈을 냅니다. 비급여 항목 치료는 치료비 전체를 내 돈으로 냅니다.
그래서 비급여 치료는 원래 받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내 쌩돈을 내야 하니까요. 그런데 우리에겐 실손의료비보험이 있습니다!
실손의료비보험은 급여항목이든 비급여 항목이든 내가 부담하는 돈에서 일정 부분을 보상해 줍니다. 건강보험과 다른 점은 내 주머니에서 먼저 돈이 나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쨌든 환자는 실손보험으로 처리를 할 수 있으므로 비급여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지불 능력이 생겼고, 병원은 돈을 많이 벌고 싶습니다. 비급여 치료는 의사가 가격을 정할 수 있으니까 여러 가지 종류의 비급여 치료를 실시합니다. 환자는 비급여 치료를 열심히 받았고 병원은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과했습니다.
비급여 치료가 급격히 팽창하자, 여러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말짱한 눈에 백내장이 있다고 수술을 하거나, 병원에 오지도 않고 도수치료를 받았다고 하고, 미용치료를 받고 무좀 치료를 했다며 실손보험금을 받아 가는 보험 사기 사례가 계속해서 등장했습니다.
의사들은 조금 잘못하면 소송을 당하는 상황에서 전전긍긍하며 대형 병원에 남아 수술을 하고 환자를 보고 있는데, 병원을 차려 실비보험금을 타깃으로 한 비급여 치료에 집중하고 있는 동기나 선후배들이 돈도 훨씬 많이 벌고 소송에 휩싸일 걱정도 없어 보입니다. 도저히 사명감과 의무감을 가지고 환자를 볼 마음이 없습니다.
또, 비급여 치료가 늘어나면서 건강보험의 급여 부분 지출도 늘어나고 있답니다(그런데 이 부분은 설사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뒤에서 얘기할 혼합진료 금지 제도를 적용할 정도의 영향력을 미치는 부분인지는 조금 의문입니다).
자, 이런 내용들 때문에 건강보험과 실손보험과 관련된 제도들을 뜯어고치겠다고 합니다.
그럼 뭘 어떻게 바꾸려고?
종합 계획은 의사 증원, 수가 조정 등 여러 가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제가 관심 있는 "비급여·실손보험 관리 강화" 부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앞으로는 실손보험 상품 개발 및 변경 시 보장범위나 비급여 진료에 대한 보험금 지급 기준에 관하여 복지부와 금융위 간에 사전협의를 거치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 것이라 합니다. 정부가 사보험 개별 상품의 보장 영역까지 깊게 관여하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다음으로 오늘의 이슈인 혼합진료를 금지한다고 합니다. 이 부분 때문에 개원가에 많은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혼합진료는 급여 치료와 비급여 치료를 동시에 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리치료 받으면서 도수치료를 받거나, 물리치료 받으면서 체외충격파 시술을 같이 받는 것이죠.
혼합진료를 금지하게 되면, 물리치료를 받는 날 도수치료를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물리치료만 받고 체외충격파는 다른 날 받아야 하죠.
이를 위반하게 되면 건강보험이 적용될 수 있는 급여 진료항목에 대한 비용도 전부 환자가 부담을 하게 됩니다.
일본의 경우 수술 중 비급여 약재가 사용됐다면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어 전체 수술에 대한 비용을 환자가 부담하게 된다고 하네요.
정부는 혼합진료금지를 발표한 후 혼란이 커지자 일부 비중증 과잉 비급여 치료에 대해서만 이를 추진할 것처럼 얘기하면서 그 예로 도수치료, 백내장, 체외충격파, 비밸브재건술, 하이푸시술, 맘모톰절제술, 갑상선고주파절제술, 하지정맥류 시술 등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 이해가 짧은 것인지 실제로 이런 치료들에 대해서 혼합진료 금지가 우리나라에서 엄격하게 적용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물리치료와 도수치료처럼 환자에게 추가 비용 부담이 발생하지 않게 깔끔하게 분리 진료가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가령 백내장 수술은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다초점렌즈 삽입수술을 의미하는 것인데, 혼합진료를 금지하게 되면, 하루는 병원에 가서 백내장을 걷어내는 처치만 하고, 다른 날 다시 방문해 렌즈를 삽입하는 수술을 하게 되는 것일 겁니다.
비급여 치료인 다초점 렌즈를 삽입하는 날에도 기본적인 급여항목의 의료 행위들이 이루어지는데, 이런 부분들도 다 건보 적용을 받을 수 없게 되므로 환자가 다 부담을 해야 할 것입니다.
과연 각막을 열어 백내장만 걷어낸 뒤 다시 닫고 다른 날 다초점렌즈를 삽입하는 경우가 실제로 있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백내장은 그나마 개념적으로는 분리를 할 수 있는 수술이지만, 하이푸시술, 맘모톰절제술, 갑상선고주파절제술, 하지정맥류 수술등은 급여 적용이 가능한 항목을 세부적으로 분리해 다른 날 의료행위를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처치들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아마도 이런 처치들은 환자가 전부 자비로 병원비를 부담하게 될 것 같습니다.
영향
한편, 현재까지 판매된 실손보험의 약관으로는 혼합진료 금지 자체로 보험금 지급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분야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느끼셨겠지만, 정부가 예를 들고 있는 비중증 과잉 비급여 치료 항목들은 대부분 보험사들이 어떻게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수술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항목을 선별하는 과정에 보험사가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어쨌든 이 치료들은 실손의료비 보험금 청구와 관련해서 굉장히 분쟁이 많은 시술들입니다. 만약 혼합진료 금지 제도가 해당 시술들에 전부 적용되면, 가뜩이나 실손의료비 보험금을 받기 어려운 시술인데다가 환자가 우선 병원에 내야 하는 병원비 역시 더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이런 치료를 받으려는 환자의 수가 아마도 지금보다 더 줄어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2022년 백내장 입원실손 보험금 청구와 관련하여, 보험사가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하였다가 얼마 전부터 하급심 법원들이 조금씩 다시 환자들의 손을 들어줘 보험금을 지급하는 판결을 내리게 되면서, 보험사가 이제는 정책적인 방법으로 보험금 지급 대상 처치의 발생 빈도를 낮추려고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그리고 정부가 이런 수술들에 대해서 혼합진료를 금지하게 되면 관련 수술이 병원의 수입원 중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병원들은 아마도 재정적으로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제가 드는 걱정은, 정부가 이렇게 특정 수술에 대해 선별적으로 칼을 빼내들게 되고, 그 선별 과정에 보험사의 영향력이 크다면, 보험사의 결정에 따라 의료기관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특정 수술들을 지목하는 것 자체로 해당 수술들이 무언가 특별히 의학적 효용이 없는 수술처럼 느끼게 하는 효과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해당 의료 처치를 받으려는 사람들 역시 더욱 줄어들게 될 것 같네요.
제 생각에, 정부는 아마도 보험사와 뜻을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비급여 치료에 대해 실손의료비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 방향으로 말입니다.
설사 정책적으로 비급여 처치 발생 빈도를 낮춘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치료를 선택한 사람들은 있을 것입니다. 그 환자들은 아마도 보험사와 현재보다 더 치열한 분쟁을 겪게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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